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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목공사원가계산 /Art Institute of Chicago
작년 4월부터 8월까지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에드워드 호퍼: 길 위에서’ 전시, 혹시 가보셨나요. 국내에서 열린 대규모 호퍼 전시론 처음이라 그랬는지 30만명이 넘게 몰리면서 크게 성공했죠. 전 전시 초기에 갔다가 사람에 밀려 제대로 감상은 못하고 별내사랑 설렁설렁 구경만 하다가 나왔습니다. 대표작도 없던데 전시장은 북적북적. 호퍼 전시라면 다들 (저기 위에 붙여드린)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Nighthawks, 1942)을 보고 싶으셨겠지만 작년 전시엔 없더군요.
이번 다큐 ‘에드워드 호퍼’엔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작년 전시에 못 온 그의 대표작을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은행개인대출 전 이번 다큐에서 제일 반가웠던 게 호퍼의 육성 인터뷰였어요. 호퍼 할아버지가 매우 까탈스럽고 퉁명스럽고 사람 만나기를 싫어했다고 하던데, 그래서인지 인터뷰 영상이 많지 않거든요. 대신 어쩌다 한 인터뷰는 저 같은 기자 입장에선 너무나 감사하게도 심하게 솔직하셨어요. 예를 들어, 많은 평론가들이 격찬해마지 않는 스웨덴 감독 잉마르 베리만에 대해 묻자 “안 전북신용보증재단 좋아하오. 허위이고 감상적이지”라고, 마치 “내 손가락은 5개”라고 말할 때처럼 건조하게 답하는데 매우 심드렁한 그 목소리와 표정이 오히려 빠져들 듯한 마력이 있었습니다. 호퍼는 뉴욕에서 일러스트레이터로 출발했는데, 그 사실에 대한 질문에는 “나 일러스트 싫어하오, 돈이 필요해서 그렸소”라고 역시 솔직한 답변을. 적당한 타협이나 번드르르한 윤색과는 거리가 포스코더 먼 그 모습에 반했습니다.
/Museum of Modern Art
저뿐 아니라 많은 영화감독들이 호퍼에 빠져들었는데요, 알프레드 히치콕은 호퍼 그림에서 영감을 받아 저 유명한 ‘싸이코’의 살인마 노먼 베이츠의 집을 만들었습니다. 바로 위에 제가 곰손으로 합성해놓은 그림을 보시면, 전체 그림이 호퍼의 작품 ‘철길 옆의 집’(House by the Railroad, 1925)이고, 오른쪽 위의 흑백 사진이 ‘싸이코’에 나온 노먼 베이츠의 집이에요. 다큐에선 저 집과 히치콕이 스치듯 나온답니다.
그렇다면 호퍼가 누구냐. ‘20세기 미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화가’라고도 하는데, 쉽게 기억하시려면 ‘평범한 미국인의 일상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화가’, 이렇게 기억하시면 어떨까 합니다. 여러분께서 호퍼를 키워드로 포털이나 유튜브를 검색하시면 고독 혹은 도시인이라는 단어를 많이 보실 거에요. 앞에서 말씀드린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대표적이죠. 전 이 그림 볼 때마다 궁금했어요. 도대체 출입문은 어디에 있는가. 저기 오른쪽에 노란문 보이는데? 하실수도 있는데 그 문, 자세히 보시면 손잡이가 없습니다. 들어갈수도 나갈수도 없는, 환하게 불 밝혀진 저 식당. 그 안의 사람들을 관람객은 관찰하듯 엿보게 됩니다. 매우 일상적이고 평범해보이지만, 볼수록 불가사의한 퍼즐 같은 그림. 전 그래서 호퍼 작품에 사람들이 끌린다고 생각해요. 어디선가 본 듯한데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쏭달쏭하고, 어쩐지 한구석이 쓸쓸하고. 호퍼 그림 속 사람들은 누구도 서로에게 말을 걸지 않죠. 왜 저기서 무엇을 하는지 궁금해지는데 잘 모르겠고. 그래서인지 여러 번 봐도 질리지 않고 매번 새롭죠.
/루믹스미디어
바로 위의 그림은 10월에 개봉했던 영화 ‘더 킬러스’ 중 한 장면인데요, 저기저기 가운데 벽에 보시면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걸려있는 거 보이시죠? ‘더 킬러스’는 감독 4명이 만든 단편 4편이 쭈욱 이어지는데, 그 4편 모두에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저 장면은 3번째로 나오는 장항준 감독의 ‘모두가 그를 기다린다’인데요, 오른쪽 저 여성분이 저 식당 주인이에요. 팔뚝에 수선화 문신이 있다는 악명 높은 킬러를 찾아서 여러 사람이 식당을 찾아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그 킬러가 누군지는 사실 너무 뻔해서 미스터리나 추리로는 힘이 달리는데, 보신 분들 중엔 장항준 감독의 연출적 개성이 잘 드러나서 반가웠다는 분들이 많더군요.
이번 다큐에는 호퍼의 개인사가 많이 들어있는데, 예를 들어, 키가 너무 커서 고통스러워했다고 해요. (으잉?) 중학교 때 이미 193센티였다는데 애들한테 키 크다고 놀림을 많이 받았대요. 요즘 같았으면 다들 부러워했을텐데. 친구는 별로 사귀지 못하고 책만 죽어라 읽었다는데 프랑스 파리에 놀러가서도 몽마르뜨니 뭐니 이런 유명한 관광지는 안 가고 숙소에서 독서에 매진하셨대요. 사람 만나는 걸 별로 안 좋아하고 혼자서 그림 그리는 데에만 몰두하던 호퍼에게 가장 중요한 존재는 아내 조세핀. 요즘 유행하는 MBTI 식으로 말하면 호퍼는 대문자 I, 극내향형이었는데, 아내 조세핀은 완전히 반대로 극외향형, 대문자 E였다고 해요. 호퍼 그림의 여자는 다 조세핀이 모델을 섰대요. ‘밤을 지새우는 사람들’에 나오는 빨간 드레스 여성도 조세핀을 모델로 그린 거였고요.
이번 다큐에도 아내 조세핀이 자주 나오는데 그녀 역시 화가였기에 남편의 예술세계를 누구보다 잘 이해해서 매니저이자 보호자로 평생을 살았다고 합니다. 정작 호퍼는 아내에게 그다지 살가운 남편이 아니었다고 하는데, 일기를 열심히 썼던 조세핀이 부부싸움까지 꼼꼼하게 기록했다고 하네요. 둘 사이 자녀는 없었습니다. 그림을 팔 때면 ‘어디서 누구의 집에 걸리게 되든, 햇빛 많이 받지 말고, 상하지 말고 잘 지내라’고 빌었다고 하니, 자식을 떠나보내는 심정이나 마찬가지였나봅니다.
/Smithsonian American Art Museum
바로 위 그림은 제가 영화 ‘룸 넥스트 도어’ 레터에서 잠깐 설명드렸던 그림 ‘People in the sun’ (1960)입니다. 주인공 틸다 스윈튼이 정장을 차려입고 빨간 립스틱을 바르고 그림 속 인물들처럼 저렇게 햇빛을 받으며 누워있던 모습이 다시 떠오르네요.
제가 ‘에드워드 호퍼’ 다큐를 보다가 감탄한 장면이 있었는데요, 호퍼 할아버지가 인터뷰 답변 중에 제가 평소 생각하던 바를 그대로 말씀하셨거든요. 그때도 지금도 사람들이 호퍼 그림하면, 고독, 도시인, 현대인이라는 단어로 해석하는데요, 다큐에서 인터뷰어가 물어요. “(호퍼 그림에서) 인공적인 환경 속의 현대인을 본다고 합니다.” 거기에 대한 호퍼 할아버지의 명언. “그건 평론가들 말이지. 그들의 말에 항상 동의하진 않소. 사실일 수도 아닐 수도 있지. 관람객이 그림을 어떻게 보느냐에 달라지는 것이오.” 크~.
이 말은 영화에도 그대로 들어맞습니다. 한 영화에 대해 평론가들이 이렇다저렇다 참 많은 말을 하지만 그건 사실일수도 아닐 수도 있는거죠. 어느 쪽인지는 보는 사람에게 달린 겁니다. 해석은 사후약방문식으로 붙이기도 하고, 말하기 편하게 만들어지기도 하는 거고요. 중요한 건 여러분이 영화를 어떻게 보느냐일뿐, 다른 누가 뭐라고 하는 건 참고만 하시면 됩니다. 저 포함해서요. 영화를 본 사람이 100명이면, 100가지 해석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영화든 그림이든 보는 사람이 다시 볼 때마다 새롭게 태어나는 게 아닐까, 그런 의미에서 예술이 영원하다는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오늘의 레터를 마무리해보려 합니다. ‘에드워드 호퍼’ 다큐를 보시면 더 친절하고 상세한 설명이 많답니다. 메가박스 단독 개봉이라 상영관을 잘 찾아보셔야 해요. 그럼, 저는 다음 레터로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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